2015년 4월 29일 수요일

[이슈]복학왕 대란-풍자와 명예훼손의 차이

  레진으로 넘어간 뒤에 네이버 웹툰 중에서 반드시 챙겨보는 건 단연코 프린세스(날 가져 시벨ㅠ)지만, 그건 정말 시간이 없을 때고ㅋPC나 와이파이에서는 다른 차애 웹툰들도 이것저것 당연히 본다. 하지만 차애도 아니라서 클릭하는 거 까먹고 있다가 가끔 들어가서 쭉 보는 정도인 웹툰들이 있는데, 마음의 소리나 놓정 같은 인기 많고 소소한 재미 있는 것도 이해하지만 그냥 내 스타일과는 거리가 조금 있는 것들이다. (그냥 취향 차이지 이 웹툰들이 노잼이라는 얘기는 아니다.)
 
  복학왕도 나에게는 그런 부류에 속해있었는데, 발표랑 과제도 다 끝나고 다음 시험이 다가오기 전에 웹툰판에서 놀고 있다가 오랜만에 클릭했는데 별점이...
 
 
  별점이 시망ㅋㅋㅋㅋㅋ
패션왕 때부터 별점(및 그것으로 대변되는 네티즌의 붕노)과의 지리한 밀당을 하던 기안84씨였기 때문에 나는 단순히 그냥 "또 지각했나?" 싶은 정도로만 생각했었는데 일이 굉장히 커져있었다.
 
  저번에도 연사로 패러디되어 등장했었던 미국 버락 오바마 대통령을(작품 속에서는 미국 대통령 우바마로 등장) 가열차게 조롱한 것. 스크롤 내리면서 WTF...
 
  무슨 UN 사무총장도 아니고 세계의 저출산 문제를 해결하겠답시고(이민자로 넘쳐나는 미국에서 저출산 문제를 왜 고민하겠냐는 물음은 제쳐두고서라도) 거의 직무유기 급으로(모든 경호를 물리치고, 테러나 인질극의 위험을 무릅쓰겠다는 건 사실상 대통령으로서는 직무유기) 무작정 기안대로 왔다는 막장 설정은 병맛이라고 참아주더라도,
 
  가만히 있는 사람을, 게다가 남의 나라 국가원수를 범죄자로 만드는 건 좀.
 
 
횡령에
 


 
 불륜암시.
 
  암시라고 해 놓은 건, 지금 이 사단이 났으니 다음 화에서는 스토리가 다르게 흘러갈 가능성도 높아서다. 막컷을 수정한 것이 그를 반영한다. 원래 막컷은 다음 주소에서 확인가능.
 
 
  여튼 원래 막컷이 상기된 볼과 반짝이는 눈으로 흥분을 암시하는 대통령의 표정이 그려진 이거였으며, 어쨌든 지금도 앞컷에 현 영부인을 패러디한 "미셸 우바마"의 문자와 잔소리를 걱정하는-아내와의 부정적 기류가 흐른다는 것을 상징하는 흔한 장치-컷도 있다.
 
  댓글란이야 복학왕 최대의 댓글수를 경신하며 서로 싸우고 있다. 하지만 베스트댓글란은 그래도 논조가 일관되고, 복학왕 이번 화가 저지른 실수를 지적하는 방향으로 의견이 형성되어 있다. 하지만 일반 댓글란은 미국에서 오바마 대통령이 아니라 S.H.I.E.L.D가 와도 꼬리내릴 법한 최강의 쉴더들이 최강방패를 펼치는 중.
 
  하지만 미국 대통령이 한국 웹툰을 읽지는 않을 테고 정말 만에 하나 보더라도 별 반응 안 할 테니(러시아였다면 네이버든 기안84씨에게든 홍차가 갔을지도 모르겠지만)외교문제는 차치하고.
 
  그게 초딩이든 유딩이든 어쨌거나 일정 계층에 무척이나 지대한 영향력을 끼치고 있는 문화매체를 담당하는 예술인이-그것도 인지도 있는-풍자와 명예훼손을 구분하지 못하고 있는 작금의 상황이 더 문제다.
 
  한 쉴더의 댓글을 부분인용해서 말하고 싶은데,
 
"미국에서는 더 깜ㅋ풍자 모르는 사람들 많으시네, 킹스맨에서도 오바마 뒤통수 폭발시켰음. 선진국 감성을 이해 못하는 우리나라 ㅉㅉ"
 
  라는 요지의 댓글이었는데(굳이 다른 감정을 담아서 선택한 건 아니고 다른 댓글들도 거의 똑같은 요지라...), 풍자와 조롱을 구분하지 못하는 너님이 더 문제다. 아니아니, 내가 랜선을 업고 막말을 하는 게 아니라요.
 
  여기서 포인트는, 풍자는 있었던 일을 비꼬아야 하는 거라는 거. 있었던 일. 킹스맨을 굳이 예로 들었으니 그를 반박하면서 말하자면, 킹스맨에서 등장한 흑인 대통령의 뒤통수는 '오바마 대통령'이 아니라 '시민을 버리고 자신의 앞날만을 챙기는 정치인'이다. 이는 역사적으로 되풀이되어 온-당장 우리나라에도 전쟁통에 다리 폭파시키고 부산으로 가신 분 있짜나여-상류층의 위선을 풍자하는 것이며, 거기서 미국 대통령은 그냥 '정치인'이 상징적으로 구체화 된 것 뿐이다.
 
  쉴더들의 논리대로라면, 복학왕 이번 화처럼, 킹스맨 감독도 "오바마 대통령님"하고 부르며 '폭발시켜 마땅한 횡령범에 불륜남'으로 묘사해도 괜찮았을까? 아니지. 왜 아닐까? 그렇게 되면 우리는 더 이상 미국 대통령이라는 상징물을 통해  '소위 선진국이라고 불리는 나라의 고위정치인들이 부리는 위선'이라는 비유를 하는 게 아니라 가만히 있는 버락 오바마라는 사람에게 거짓된 이미지를 씌워 조롱하는 것일 뿐이기 때문이다. 요컨대 범죄라는 거다.
 
  풍자와 명예훼손 사이에는 '가늘지만 명료한 선'이 있고, 또는 '명료하지만 가는 선' 밖에는 없다. 그걸 구분할 줄 아는 게 예술인의 깊이다.
 
  하지만 이번 복학왕 46화에서는 풍자고 뭐고 그냥 사람 버락 오바마를 돈 밝히고 아무 여자에나 흥분하는(봉지은이 아무 여자라는 게 아니라 바로 전날 만난 여자애라는 점) 찌질이로 묘사해 놓았을 뿐이다.
 
  왜? '공인' 오바마 미 대통령이 '현실'에서 그런 짓을 저질렀기 때문에? 아니, 그냥 재미있을 것 같아서다. 이건 명예훼손이고 비상식적인 조롱이다.
 
  당장 실사인물을 풍자한다고 치자. 만약에 저 위에 똑같이 불륜을 암시하는 장치를 묘사해도, 저 자리에 빌 클린턴이 있었다면, 그리고 똑같이 국방예산 횡령을 묘사해도 그 자리에 방산업체나 그와 결탁했다는 암시가 장치된 정치인 캐릭터가 있었다면 나도 웃었을 것이다. (물론 그게 뜬금없다는 사실은 고려하지 않기로 하고)
 
  하지만 이번 46화의 '찌질이 우바마 대통령'에서는 아무런 위트나 센스, 성찰이나 깊이가 보이지 않는다. 기안84 작가님이 또 소재가 고갈됐구나 라는 익숙한 느낌 외에는.
 
P.S.
  내가 너무 진지하게 반응한다고, 재밌자고 한 것에 왜 그렇게 민감하냐고 말하는 사람 분명히 나올 거다.
 
  하지만 그런 당신이 알아둬야 할 것은 
 
  첫째, 내가 이 문제를 진지하게 다룸으로써 생길 수 있을 법한 부작용은 노잼에 불과하지만 그런 너님은 한편으로 '웃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사람으로써 '범죄'를 양산해 낼 수 있다는 점.
 
 그리고 둘째, 그런 네오나치 집단이 우리나라에는 벌써 있고 사회 문제이며, 거기에 속한 많은 범죄자들이 하는 변명은 "재밌으니까 괜찮앙ㅋ"이라는 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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