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 차이나타운의 카페에 놀러갔는데, 거기에 있는 전화기에 서기력과 함께 쓰여 있던 일본 연호 대정 7년(1918년)이 묘하게 눈에 밟혔다.
물론 그 때는 융희 때도 지나서 대한제국 연호를 쓸 수 있는 시기가 아니지만 일본의 문화재를 가져온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 안에서 쓰던 흔하디 흔한 기성품에 왜 굳이 서기력과 함께 다이쇼라는 일본 연호로 나이를 매기는 건지 잘 이해가 안 갔다. 무슨 사학적 이유가 있나 싶었다. 그래서 빙수를 가져오신 알바 언니께 서기 연도와 같이 일본 연호를 굳이 병기해놓은 데에 이유가 있냐고 여쭤봤더니 자기도 알바라서 잘 모르겠다고 사장님께 여쭤보겠다고 하셨다.
나중에 사장님이 오시고, 알바 언니께서 가셔서 여쭤보는 소리가 들렸다. 관심 안 가지는 척 했지만 귀가 쫑긋쫑긋했다. 뭐 다는 들리지 않았지만 사장님께서 어이없다는 말투로 '그건 그냥 시대를 표기한 거야, 상관 없어'라고 하시는 건 잘 들렸다.
내 자격지심인지 뭔지, 묘하게 '뭐 그런 걸로 걸고 넘어지는 손님이 있어'라는 느낌이 묻어나서, 내가 뭔가 잘못 물어본 것 같다는, 쓸데없이 오버한 건 아닌가 하는 찜찜함이 계속 맴돌았다. 그리고 마치 치기어린 행동을 한 것 같아서 뭔가 비난받는 느낌이었다.
평소에는 오히려 지나친 민족주의를 경계하는 편이고 소위 말하는 국뽕은 정말 싫어하지만 한 나라의 부강과 권력을 타국에 어필하는 용도로 개발된 연호에 우리 모두가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존중해줘야 할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연호를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까지 자발적으로 병기해 줄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지 않아서 여쭤봤을 뿐이었다.
하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아니, 당연히 못했다.
누군가는 분명 이 모든 게 치기어리고 지나친 생각이라고 할 것 같아서.
내가 소신이 없는 건지 잘 한 건지 헷갈려서 찝찝했던 거야 내 사정이었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