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년 10월 25일 토요일

[잡담]그냥 전화기와 대정 7년


 오늘 차이나타운의 카페에 놀러갔는데, 거기에 있는 전화기에 서기력과 함께 쓰여 있던 일본 연호 대정 7년(1918년)이 묘하게 눈에 밟혔다.

 물론 그 때는 융희 때도 지나서 대한제국 연호를 쓸 수 있는 시기가 아니지만 일본의 문화재를 가져온 것도 아니고 우리나라 안에서 쓰던 흔하디 흔한 기성품에 왜 굳이 서기력과 함께 다이쇼라는 일본 연호로 나이를 매기는 건지 잘 이해가 안 갔다. 무슨 사학적 이유가 있나 싶었다.
그래서 빙수를 가져오신 알바 언니께 서기 연도와 같이 일본 연호를 굳이 병기해놓은 데에 이유가 있냐고 여쭤봤더니 자기도 알바라서 잘 모르겠다고 사장님께 여쭤보겠다고 하셨다.

 나중에 사장님이 오시고, 알바 언니께서 가셔서 여쭤보는 소리가 들렸다. 관심 안 가지는 척 했지만 귀가 쫑긋쫑긋했다. 뭐 다는 들리지 않았지만 사장님께서 어이없다는 말투로 '그건 그냥 시대를 표기한 거야, 상관 없어'라고 하시는 건 잘 들렸다.


 내 자격지심인지 뭔지, 묘하게 '뭐 그런 걸로 걸고 넘어지는 손님이 있어'라는 느낌이 묻어나서, 내가 뭔가 잘못 물어본 것 같다는, 쓸데없이 오버한 건 아닌가 하는 찜찜함이 계속 맴돌았다. 그리고 마치 치기어린 행동을 한 것 같아서 뭔가 비난받는 느낌이었다.

 평소에는 오히려 지나친 민족주의를 경계하는 편이고 소위 말하는 국뽕은 정말 싫어하지만 한 나라의 부강과 권력을 타국에 어필하는 용도로 개발된 연호에 우리 모두가 손에 손잡고 벽을 넘어서 존중해줘야 할 객관적이고 중립적인 가치가 있는 것도 아니지 않은가. 일본 제국주의 시대의 연호를 개인이 운영하는 카페에서까지 자발적으로 병기해 줄 필요가 있다고 여겨지지 않아서 여쭤봤을 뿐이었다.

하지만 말은 하지 않았다. 아니, 당연히 못했다.
누군가는 분명 이 모든 게 치기어리고 지나친 생각이라고 할 것 같아서.

내가 소신이 없는 건지 잘 한 건지 헷갈려서 찝찝했던 거야 내 사정이었고.



2014년 10월 21일 화요일

[물건]분홍분홍 스니커즈


 
 사실 이런 류 스니커즈의 디자인이 유행이기도 하고 색깔도 소녀스러운 분홍이라 생각해내기 어렵지 않은 조합이다. 그래서 늘 어디선가 본 것 같으며,조금만 눈 돌려서 찾아보면 어디에서나 살 수 있을 것만 같은 신발인듯 한데 찾기가 이상하게 쉽지 않은 완전 무결한 핑크 색상의 스니커즈.
 
 신발이 높아서 나름 다리 라인을 살려주는데다 인터넷으로 샀기 때문에 싸게 잘 신고 있다. 가격은 시장급 :D

2014년 10월 14일 화요일

[여행]2014 가을농활/전북 익산 하표마을

 
일했던 블루베리농장에서 내어주셨던 간식.
직접 뜯은 쑥으로 만든 작살나는 쑥떡과 단 고구마,
그리고 사진에는 없지만 블루베리잎으로 끓인 허브차를 시원하게 해서 내 주셨다.

 
 
 
블루베리농장의 5개월된 진도믹스 아가 블루.
겁이 많아서 다가가기만 해도 도망가고는 했다. 그래서 집은 지키겠니...?
 
 
2014년의 마지막 농민학생연대활동을 다녀왔다.
가을농활 꿀이라더니 누가 그랬음...?
 
이번 농활 때는 여름농활 때 영문과가 갔던 하표마을을 다녀왔다.
대신 영문과가 우리가 갔었던 석치마을로 갔다고.
저번에 석치마을에서의 기억이 원체 좋았어서 처음에는 무척 아쉬웠는데
하표마을도 정말 좋은 곳이어서 새로운 추억만이 남은 듯.
 
풍채 좋으시고 마음씨도 그만큼 좋으신 미중년 이장님과
다들 친절하시게 대해주신 마을주민 분들 덕분에 힘들지만 재밌게 활동하고 왔다.
 
애써 내색은 안하시더라도 말씀하시는 군데군데 묻어나오는 고된 농촌생활과
그만큼 힘든 농촌의 현실이 청량한 가을공기 속에서 씁쓸하게 순간순간 다가왔다.
 
2박 3일의 짧은 일정이었던 데다가 주말이 끼어서 이장님을 자주 뵐 수 없었는데, 그 이유가 뭐냐면,이장님께서 로컬푸드마켓을(실제로 명칭이 이거) 준비하셔야 했기 때문이었다.
 
로컬푸드마켓. 우리라면 몰라도 농촌 어른들께는 명칭조차 생소할 행사라고 생각이 들지 않는가?
하지만 전국에서 손꼽힐 정도로 잘 진행되고 있는 곳이 익산이라고.
 
많은 사람들이 유기농, 친환경 농작물을 지역 내에서 거래하는 로컬푸드마켓,직거래, 조합 등이 외국의 제도를 따라하는, 허풍 떠는 도시 사람들만의 허울 좋은 이상이라고 생각해 왔겠지만
 
농촌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보다 아주 빠르게 변화하고 있었던 거다.
생동감 넘치고 분명하게 말이다.
 
환경과 조합론을 말하면서도 회의를 경험했던 내가
어쩌면 거만하지는 않았는지 돌아보게 해 주었던 가을농활이었다.
 
 
p.s
일했던 농장이 <익산베리팜>이라는 농장이었는데
거기서 아주 아주 마지막으로 몇 개 달려있는 블루베리를 따먹어봤다.
그동안 내가 먹었던 모든 블루베리의 맛을 회의하게 만드는 맛이었...
 
블루베리는 냉동이고 냉장이고 바로 따서 먹는 거랑은 기본적으로 맛 자체가 달랐다.
여름에는 체험도 하신다고 하니 한 번쯤 경험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을 듯.
블루베리는 진짜 생으로 한 번 먹어보는 게 신세계다.
 
<익산베리팜> 블로그
 
 

[여행]2014 진주유등축제-야시장






 
우리나라의 지역축제에 곧잘 서고는 하는 야시장은 언제나
어릴 적 부모님 손을 잡고 다니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말 잘 듣고 순진한, 귀여운 초글링이었던 내가
아빠 손을 놓거나 엄마 손을 놓거나
 
혹은
 
같이 자그마했어도 어쨌든 오빠 손이라도 놓으면
금세 길을 잃을 것만 같았던 기억이 아직 끝자락이나마 남아 있는데
 
나는 벌써 이만큼이나 자라서 희미하게나마 별이 보이는 새벽까지
친구들과만 신나게 웃으며 술잔을 부딪히면서 돌아다니고 있다는 사실이 재미있다.
 
인생을 살면서 내내 허용되지 않았던 것이 하루를 기점으로 순식간에 쏟아져들어와서 그럴까,
어른이 되면 해야지 했던 것들을 할 때마다 내 자신이 가끔은 낯설게 느껴질 때가 있다.
 
다른 지역으로 향하는 고속버스에서 집으로 가고 있는 게 아니라는 걸 문득 깨달을 때라거나
축제 야시장에서 소시지를 뜯는데 엄마 아빠가 내 옆에서 손을 잡아주지 않고 있을 때라거나.
 
 

[여행]2014 진주 유등축제-유등

 
 
 



 
 
유등을 보고 아름답고 예쁘다고 감탄하기도 했지만
오랜만에 본 친구들과 함께라는 사실 그 자체가 즐거웠고
사소한 것에도 소리높여 웃었다.
 
새벽이 왔고 추운 공기 아래 버스터미널 앞에서
친구들에게 손을 흔들 때. 벌써 그리운 눈을 한 친구들의 눈동자 안의 나도
무척 아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
 
진주에 대해 느꼈던 건 역시 강을 끼고 있는 도시는 무척이나 아름답다는 것.
과거 풍류의 도시였던 이유를 알 것 같았다.
그리고 우리 모두 남강에 쓰레기 버리지 말자.
 
 
 



2014년 10월 8일 수요일

[책]신부이야기 6권

<대단한 건 아니지만 스포일러 주의하세요:)>
 
사실 그 유명한 빅토리아시대 메이드물 <엠마>가 그렇게 취향이 아니었어서(어릴 적 기억이라 확신하기는 어렵지만) 읽지 않았기 때문에 카오루 모리 작가님의 수려한 작화와 눈이 빠질 만큼 호화로운 실력에 대해서는 그저 풍문으로 들었소 정도였다.
 
그런데 윤지운 작가님의 <눈부시도록>이 잠시 이슈에서 휴재하던 동안 <신부이야기>가 몇 화 연재됐었고-대원씨아이에서 출판하기 때문에-말도 안 되는 화려함으로 눈을 압도하는 패턴과 깔끔한 작화에 넋을 잃고 단행본 구입을 시작했었다.
 
또 그뿐만 아니라 스토리가 무척이나 취향저격이기도 하다. 중앙아시아라니! 페르시아 만이라니!
 
 물론 타 사회의 문명에 쉽사리 신비감을 갖는 것도 오만한 태도일 수 있으니 조심스럽게 견지해야겠지만, 그래도 중앙아시아는 나에게 별세계 같은 느낌을 준다는 것도 부인하기 어려운 사실이다. 광활한 초원과 쏟아질 듯한 별, 유목민들이니만큼 미련없이 남길 줄 아는 작별인사, '두 번 다시는'이라는 말을 두려워할 것 같지 않은 사람들에게 느끼는 판타지와 같은 동경이 있다. 뭐 굳이 내가 미래의 입장에서 그 때의 그들을 바라보기 때문이라기보다는 그냥 내가 농경문명의 일원이기 때문에 생기는 듯.
 
그리고 그렇게 사던 책이 어느덧 6권째.
 
초판한정 스티커를 주길래 6권째에서나 와서 새삼스레 후기를 남긴다.
 
여러분, <신부이야기> 보세요! 두 번 보세요!
 
 
 
아삼ㅠㅠ삼ㅠㅠ
나는 이 두 남자들을 보면서 그냥 생활력 강하고 내 여자에게 신의를 지키기만 하면
내 남자가 되기에 부족함 없음을 새삼 깨달았다.
하지만 그런 남자는 찾기 어렵지
 
아...아제르님....나쁜남자의 표본 아닌 표본.
사실 나쁜남자가 된 것도 주위 상황이 아제르를 몰아간 것 뿐이지
사실은 그냥 올곧고 과묵하고 내 여자에게 친절한,
오히려 헌터보다는 선비 성격인듯.
 
하지만 호전적이어야할때는 짐승남으로 돌변하다니
이런 취향저격인 분
 
아미르느님이시다 오오 아미르느님
후기에서 밝혀졌지만 모리 카오루 작가님의 모든 페티시를 갈아넣어 만들었다고.
여한이 없다고
여태까지는 카오루 작가님의 공식지정 인생캐인듯 하다.
 
아 이건 그냥 아제르가 좋아서.
 
귀여운 쌍둥이 자매 라일라와 레일리.
나는 이 두 자매의 현실성 없는 꿈이 밉지 않았다.
 
 
신부이야기
 
Heart Rate
 
작가님의 혼을 갈아넣은 듯한 유려한 작화와 호화로운 패턴. 눈호강하고 가세요 여러분
 
이 중에 네 취향이 하나쯤은 있겠지-
    아방한 양갓집 규수, 츤데레, 연하남, 짐승남, 누님, 발랄깜찍 모두 다 나온다는 점,
    그리고 그렇게 다양하고 여러가지 면을 가진 캐릭터가 많이 나오지만 산만하지 않다는 점은 호평할 만하다.
 
스토리라인을 허겁지겁 끌고가지 않는다는 점. 러브라인도, 그 외의 스토리도 모두 적당한 템포로 흘러간다.
 
아제르, 아제르!! 내가 부르다 죽을 그 이름 아제르

[책]시타를 위하여 텀블벅 프로젝트

 
(<시타를 위하여> 텀블벅 프로젝트 페이지)
 
개인적으로 무척 좋아라 했던 웹툰 <시타를 위하여> 완전판 텀블벅 프로젝트!
물론 이 이후에도 단행본으로 제작된다고 하지만 여기서만 받을 수 있는 일러나 상품들 등이 있어서...
그리고 난 올바른 덕후가 되기 위해 오늘도 'limited'라는 단어에 울고 웃지 뀨뀨
 
 


 
 
p.s
 
혹시 덕후분께서는 스텐 텀블러, 한정판 일러스트, 노트 등이 포함된
w40,000 상품이 한정판이니 서두르는 것이 좋을 듯!
 

[책]눈부시도록 13권

 

내가 만화를 책으로 분류하지 않는 사람들의 말에 완전히 동조하지 않는 이유가 윤지운 작가님과 같은 분들이 계시기 때문이고, <눈부시도록>과 같은 책이 있기 때문이다.
 
 어떻게 말하면 굳이 만화책이라서가 아니라 어떤 것이든 '~하기 때문에'라는 커다란 상징성을 부여하는 것은, 또는 할 수 있다는 것은 대단한 일임에 틀림없을 것이다. 하지만 윤지운 작가님과 작품들은 충분히 그럴 만한 가치가 있다.
 
 유쾌한 듯 하면서 의표를 찌르는 놀라운 단어선택과 언어의 이용, 그리고 거기에서 자연스레 자아내어지는 그 미묘함과 담백함은 어떻게 해도 표현하고 전달하기 어렵다. 어떤 매체의 크리에이터이든 간에 그런 것을 구체화해내고 싶어할 텐데, 윤 작가님은 매번 실패 없이 수려한 작화와 유쾌한 언어로 일상 속 설명하기 어려운 감성을 전달한다. 글을 쓰고 말을 하는 입장에서 분명 탐나고 동경할 만한 재능이다.
 
 <눈부시도록>은 다양한 인간관계를 보여주기는 하지만 본질적으로는 결국 청춘스토리다. 어렵고 힘든, 감성과 감정을 넣어두고 닫아두기를 강요당한 두 아이가 서로의 빛을 알아보는 이야기다.
 하지만 이 책은 자기계발 식의 훈계를 하는 데우스 엑스 마키나 같은 연장자도 없고 이성적으로 이해할 논리나 교훈도 없다. 그런데, '그럼에도 불구하고 살아가고 있음'이 어느새 이해된다는 점에서, 그리고 공감된다는 점에서 정말이지 매력적인 책이다.
 
 13권을 끝으로 <눈부시도록>은 대단원을 내렸다. 눈에 보이는 교훈이나, '아프니까 청춘'이라는 달콤한 자기기만적 대안은 없다.
하지만 책의 결말은 그 어느 책보다 담담하고 가슴 깊이 박히는 위로를 전한다.
 

 '그럼에도 그들은 걸어간다. 매번 벽을 마주하는 여린 아이들의 마음이 부서져 내린 파편에서 반사된 빛일지언정, 눈부시도록.'
 


 
 
나를 보듬어 줄 사람은 어디에 있을까.
 
 
p.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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